우리는 종종 삶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너무나 당황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왜 하나님은 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왜 하나님은 믿음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데도 침묵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나의 이런 상황과 처지를 해결해주시지 않는가?
내 기도가 모자라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인가?”
이건 개인의 경우만이 아니지요. 왜 하나님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잠잠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침묵하시는가? 옛날 나치 시절 때 가스실에서 자신이 택한 백성, 수 백만명이 고통 속에서 죽어갈 때 하나님은 아무런 일도 하시지 않았는가?
왜 오늘 하나님은 이런 악한 사회와 불의한 세상을 그냥 참아 보고 계시는가?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의인은 고통을 받고 악인은 잘 되고, 바른 말하는 사람의 입은 막아지고 성도들은 수없이 부르짖어 기도하는데도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이렇게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면 앞서 말한 것들은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 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건 분명한가? 우리는 끊임없는 이러한 의심들과 싸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인간의 울부짖는 절규로 시작이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2절의 말씀입니다.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오늘 우리가 다룰 주제의 첫 번째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선한 분이시라면 그분은 연약하여서 이 악을 제거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그는 전능한 존재가 아니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에 첫 번째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1. '하나님의 방식을 우리의 쉬운 논리로 설명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차원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사야 55장 8, 9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처럼 우리가 고난에 대해 내리는 답이 하나님의 생각과 늘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원인에 대해 우리에게 모든 답안지를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어떤 고난은 죄의 결과일 수도 있고, 잘못된 습관이 낳은 열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고난의 이유를 '이것이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보다, 많은 경우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둡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가 너무 쉽게 해석하려 드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특히나 고통당하는 지체 앞에서 섣불리 그 고난의 의미를 해석하려 드는 것은 무모함을 넘어, 악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2.'고난의 이유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놓치지 않는 것’ 입니다.
고통스러울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죠. '하나님께 가서 따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게 될 텐데... 입술로 죄를 짓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고통을 들고 나오는 것을 결코 죄라 하지 않으십니다.
하박국 1장 13절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보십시오. 지금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사실상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항의'입니다.
'하나님, 눈이 정결하신 분이 어떻게 이 악을 보고만 계십니까? 왜 침묵하십니까?'라고 따져 묻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하박국의 외침을 꾸짖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네가 감히 어디라고 대드느냐"라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고난이 우리에게 마음대로 불평하고 원망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습관적인 원망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을 붙들고 원망하면 '죄'가 되지만,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면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고통을 토로하고, 때로는 항의하는 것, 하나님은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너무 점잖하게 있지 않으셔도 됩니다. 깊이 상처 입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겉치레를 하는 것은 상처를 곪게 만들 뿐입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쏟아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치유는 정직함에서 시작되는 것을 깨닫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 나의 상한 감정까지 숨김없이 드러낼 때,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의 만지심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종종 숨기시며, 우리에게 일일이 설명할 의무가 없으신 분’ 이십니다.
고난의 때에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정말 당혹스럽죠. 마치 하나님이 내 기도를 외면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不在)'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해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자꾸 묻습니다. '왜입니까?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가 이유를 안다고 해서 우리에게 참된 만족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설명을 듣는다고 해서 당장의 고통이 사라질까요? 마치 이런 착각과 같습니다. 암 환자가 자신이 암에 걸린 원인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즉시 암이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인을 아는 것과 병이 낫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는 조국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지, 예루살렘 성전이 왜 무너졌는지 그 영적인 원인을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고통이 사라졌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눈물 흘렸고, 그의 절망은 깊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뼈가 깎이는 전인격적인 아픔인 것이죠.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벽한 답변을 듣는다 해도, 그 작은 지식이 나의 그 큰 아픔을 다 메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침묵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더 높은 생각을 신뢰하길 바랍니다. 지금 내 눈에는 버려진 잡동사니처럼 보이는 인생의 조각들일지라도, 하나님은 지금 묵묵히 그 조각들을 주워 담아 여러분을 위한 '보배로운 집'을 짓고 계십니다.
다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설명(Explanation)'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응답(Answer)'을 주시는 분입니다. 고작 '네가 이래서 힘들다'라는 원인 분석이나 해주는 분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원인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비록 지금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믿음으로 버티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4. '끝까지 인내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결코 늦으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박국 2장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께서 고난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시는 핵심 과목은 바로 '인내'입니다. 자식을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 온실 속 화초처럼 과잉보호만 하면, 그 자녀는 거친 세상을 이길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분의 자녀를 그렇게 키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기저귀나 갈아줘야 하는 영적 어린아이로 남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이죠. 비바람을 견디고 서 있는 거목처럼,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가 언제인지 아시나요? 하나님은 응답의 보따리를 들고 찾아오셨는데, 우리가 그 잠시를 참지 못해 기도의 자리를 떠나버렸을 때입니다.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이 바로 응답이 문 앞에 와 있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믿음으로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삶의 고난과 문제입니다. 혹여나 지금 문제에.. 아니면 고난에 계신분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감사하게도 문제를 지나신 분들도 계시죠.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더나아가 문제인 것은 도대체 고난의 때에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것에 대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고난의 때에 너무나 쉽게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고난은 죄의 결과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고난의 때에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 고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원망이 나와도, 불평이 나와도 하나님 앞에 서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감정을 생각을 쏟아 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책망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우리가 인내함으로 믿음의 자리를 지켜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크고 놀라운 은혜로 역사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나는 귀한 하나님의 사용할만한 그릇이 될 것임을 믿고 설명이 없어도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우리는 종종 삶의 여러 가지 상황 속에서 침묵하시는 하나님 때문에 너무나 당황하고 때로는 분노하기도 하면서 살아갑니다.
“왜 하나님은 나의 부르짖음에 응답하지 않으시는가? 왜 하나님은 믿음 때문에 이렇게 고통을 당하고 있는 데도 침묵하시는가?
왜 하나님은 나의 이런 상황과 처지를 해결해주시지 않는가?
내 기도가 모자라는 것일까? 아니면 하나님이 나의 기도를 듣지 않으시는 것인가?”
이건 개인의 경우만이 아니지요. 왜 하나님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 잠잠하셨는가?
왜 하나님은 지진으로 수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침묵하시는가? 옛날 나치 시절 때 가스실에서 자신이 택한 백성, 수 백만명이 고통 속에서 죽어갈 때 하나님은 아무런 일도 하시지 않았는가?
왜 오늘 하나님은 이런 악한 사회와 불의한 세상을 그냥 참아 보고 계시는가?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의인은 고통을 받고 악인은 잘 되고, 바른 말하는 사람의 입은 막아지고 성도들은 수없이 부르짖어 기도하는데도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이렇게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사실 하나님이 없다고 한다면 앞서 말한 것들은 아무 것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문제는 더 복잡해 집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을까? 하나님이 정말 나를 사랑하시는 건 분명한가? 우리는 끊임없는 이러한 의심들과 싸워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바로 이 하나님의 침묵에 대한 인간의 울부짖는 절규로 시작이 됩니다. 하박국 선지자는 이렇게 부르짖습니다. 2절의 말씀입니다.
2. 여호와여 내가 부르짖어도 주께서 듣지 아니하시니 어느 때 까지리이까
내가 강포로 말미암아 외쳐도 주께서 구원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오늘 우리가 다룰 주제의 첫 번째 문제는 바로 이것입니다. 만일 하나님이 선한 분이시라면 그분은 연약하여서 이 악을 제거할 수 없는 존재가 아닌가? 그는 전능한 존재가 아니지 않는가?
이러한 질문에 첫 번째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1. '하나님의 방식을 우리의 쉬운 논리로 설명하려는 유혹에서 벗어나라'는 것입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은 차원이 다름을 인정해야 합니다.
이사야 55장 8, 9절은 이렇게 선포합니다.
8. 이는 내 생각이 너희의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의 길과 다름이니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9. 이는 하늘이 땅보다 높음 같이 내 길은 너희의 길보다 높으며 내 생각은 너희의 생각보다 높음이니라
이처럼 우리가 고난에 대해 내리는 답이 하나님의 생각과 늘 일치할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은 고난의 원인에 대해 우리에게 모든 답안지를 보여주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어떤 고난은 죄의 결과일 수도 있고, 잘못된 습관이 낳은 열매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고난의 이유를 '이것이다'라고 딱 잘라 말하기보다, 많은 경우 '신비'의 영역으로 남겨둡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깊은 뜻을 우리가 너무 쉽게 해석하려 드는 것은 무모한 일입니다.
특히나 고통당하는 지체 앞에서 섣불리 그 고난의 의미를 해석하려 드는 것은 무모함을 넘어, 악한 일이 될 수도 있습니다.
두 번째로 성경이 우리에게 주는 말씀은 이것입니다.
2.'고난의 이유를 아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계를 놓치지 않는 것’ 입니다.
고통스러울수록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그런데 망설이는 분들이 계시죠. '하나님께 가서 따지다 보면 나도 모르게 화를 내게 될 텐데... 입술로 죄를 짓는 건 아닐까?‘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자녀가 고통을 들고 나오는 것을 결코 죄라 하지 않으십니다.
하박국 1장 13절 말씀입니다.
주께서는 눈이 정결하시므로 악을 차마 보지 못하시며 패역을 차마 보지 못하시거늘
어찌하여 거짓된 자들을 방관하시며 악인이 자기보다 의로운 사람을 삼키는데도 잠잠하시나이까
보십시오. 지금 하박국 선지자의 기도는 단순한 기도가 아닙니다. 사실상 하나님을 향한 '거룩한 항의'입니다.
'하나님, 눈이 정결하신 분이 어떻게 이 악을 보고만 계십니까? 왜 침묵하십니까?'라고 따져 묻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런 하박국의 외침을 꾸짖지 않으셨다는 사실입니다.
"네가 감히 어디라고 대드느냐"라고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물론, 고난이 우리에게 마음대로 불평하고 원망해도 된다는 '면죄부'를 주는 것은 아닙니다. 습관적인 원망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지만 이것만은 꼭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사람을 붙들고 원망하면 '죄'가 되지만, 하나님을 붙들고 씨름하면 '기도'가 됩니다.
하나님 앞에 나아가 나의 고통을 토로하고, 때로는 항의하는 것, 하나님은 그것을 죄로 여기지 않으십니다.
그러니 하나님 앞에서 너무 점잖하게 있지 않으셔도 됩니다. 깊이 상처 입었으면서도 아무렇지 않은 척 겉치레를 하는 것은 상처를 곪게 만들 뿐입니다. 내가 느끼는 감정 그대로, 있는 모습 그대로 하나님께 쏟아놓으시길 바랍니다.
그래서 치유는 정직함에서 시작되는 것을 깨닫길 바랍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빛 가운데 나의 상한 감정까지 숨김없이 드러낼 때, 바로 그때부터 하나님의 만지심이 시작될 것입니다. 이것을 믿고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세 번째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사실이 있습니다.
3. '하나님은 자신의 목적을 종종 숨기시며, 우리에게 일일이 설명할 의무가 없으신 분’ 이십니다.
고난의 때에 우리를 가장 힘들게 하는 것은 하나님의 침묵입니다. 정말 당혹스럽죠. 마치 하나님이 내 기도를 외면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침묵은 '부재(不在)'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침묵하신다고 해서 일하지 않으시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는 자꾸 묻습니다. '왜입니까? 도대체 이유가 뭡니까?'
하지만 냉정하게 생각하면 우리가 이유를 안다고 해서 우리에게 참된 만족이 있을까요? 하나님의 설명을 듣는다고 해서 당장의 고통이 사라질까요? 마치 이런 착각과 같습니다. 암 환자가 자신이 암에 걸린 원인을 알게 되었다고 해서, 그 즉시 암이 치료되는 것은 아닙니다. 원인을 아는 것과 병이 낫는 것은 별개의 문제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를 보십시오. 그는 조국 이스라엘이 왜 망했는지, 예루살렘 성전이 왜 무너졌는지 그 영적인 원인을 너무나 정확하게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고통이 사라졌습니까?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눈물 흘렸고, 그의 절망은 깊었습니다.
우리가 겪는 고통은 단순한 지식의 문제가 아닙니다. 내 뼈가 깎이는 전인격적인 아픔인 것이죠. 아무리 논리적으로 완벽한 답변을 듣는다 해도, 그 작은 지식이 나의 그 큰 아픔을 다 메워줄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침묵 뒤에 숨겨진 하나님의 더 높은 생각을 신뢰하길 바랍니다. 지금 내 눈에는 버려진 잡동사니처럼 보이는 인생의 조각들일지라도, 하나님은 지금 묵묵히 그 조각들을 주워 담아 여러분을 위한 '보배로운 집'을 짓고 계십니다.
다음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설명(Explanation)'을 주시는 분이 아니라, '응답(Answer)'을 주시는 분입니다. 고작 '네가 이래서 힘들다'라는 원인 분석이나 해주는 분으로 하나님을 제한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원인을 설명하는 것을 넘어,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고 구원하시는 분입니다.
비록 지금은 다 이해할 수 없어도 믿음으로 버티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나의 생각보다 크신 하나님,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그 하나님을 끝까지 신뢰하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네 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4. '끝까지 인내하는 것' 입니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 같지만, 결코 늦으시는 법이 없습니다.
하박국 2장 3절 말씀을 보십시오.
이 묵시는 정한 때가 있나니 그 종말이 속히 이르겠고 결코 거짓되지 아니하리라
비록 더딜지라도 기다리라 지체되지 않고 반드시 응하리라
하나님께서 고난이라는 도구를 통해 우리에게 가르치고 싶어 하시는 핵심 과목은 바로 '인내'입니다. 자식을 너무 사랑한다고 해서 온실 속 화초처럼 과잉보호만 하면, 그 자녀는 거친 세상을 이길 힘이 없는 나약한 존재가 되고 맙니다. 우리 하나님은 결코 그분의 자녀를 그렇게 키우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매일 기저귀나 갈아줘야 하는 영적 어린아이로 남기를 원치 않으시는 것이죠. 비바람을 견디고 서 있는 거목처럼,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자라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경우가 언제인지 아시나요? 하나님은 응답의 보따리를 들고 찾아오셨는데, 우리가 그 잠시를 참지 못해 기도의 자리를 떠나버렸을 때입니다. 포기하고 싶은 그 순간이 바로 응답이 문 앞에 와 있는 순간일 수 있습니다.
비록 더딜지라도 믿음으로 기다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기에 우리는 어쩔 수 없이 피할 수 없는 질문 앞에 서야 합니다. 그 가운데 하나는 바로 삶의 고난과 문제입니다. 혹여나 지금 문제에.. 아니면 고난에 계신분도 있을 겁니다. 아니면 감사하게도 문제를 지나신 분들도 계시죠. 아니면 앞으로 다가올 문제가 있을 수도 있습니다.
더나아가 문제인 것은 도대체 고난의 때에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오늘 하나님의 말씀은 바로 이것에 대하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고난에 대해서 이야기하십니다.
‘고난의 때에 너무나 쉽게 해답을 찾으려고 하지 말아라. 고난은 죄의 결과로 오는 것만은 아니다.’ 고난의 때에 중요한 것은 우리는 그 고난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하나님과 교제하는 자리로 나아가야 한다고 하는 것입니다.
원망이 나와도, 불평이 나와도 하나님 앞에 서있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 여러분의 감정을 생각을 쏟아 내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책망하시지 않을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이 우리에게 응답하시지 않는 것처럼 느껴질 때도 우리가 인내함으로 믿음의 자리를 지켜나갈 때
하나님은 우리 가운데서 크고 놀라운 은혜로 역사하여 주실 줄 믿습니다.
나는 귀한 하나님의 사용할만한 그릇이 될 것임을 믿고 설명이 없어도 믿음을 지키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참된 믿음의 사람이 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